[천자 칼럼] 무산된 경복궁 패션쇼

입력 2022-08-29 18:02   수정 2022-08-30 00:12

올해로 13년째인 ‘창덕궁 달빛기행’은 고즈넉한 달빛 아래 청사초롱으로 불을 밝힌 채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고궁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낙선재 후원 상량정에서 대금 소리를 들으며 궁궐의 밤 풍경에 스며들고, 연경당에서는 공연도 감상한다. 올해 달빛기행은 다음달 1일부터 10월 28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오후 7시에 시작한다. 100명이던 하루 참여 인원을 150명으로 늘리고, 관람료가 3만원인데도 선착순 예매한 9월분 입장권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경복궁 별빛야행, 창경궁·덕수궁 궁궐야행 등도 인기다. 참여 인원을 제한하는 대신 고품격 관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궁의 밤 풍경을 이렇듯 오롯이 즐길 수 있게 된 건 발굴·보존·보호 위주의 문화유산 정책에 ‘활용’의 개념이 더해진 덕분이다. 2000년대 들어 문화유산의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용이 곧 보존이라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경복궁·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궁중문화축전, 숭례문 파수의식, 고궁 음악회 등이 잇따랐다. 오는 10월 1~9일 열리는 ‘궁중문화축전’은 경복궁 등 5대 궁과 종묘, 사직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국내 최대 연례 문화유산축제다. 고궁뿐만 아니라 국공립 박물관, 향교·서원·전통 산사 등 지역 문화재 활용도 활발하다.

최근 청와대에서의 패션 화보 촬영이 논란을 빚으면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와 문화재청이 오는 11월 1일 경복궁에서 열기로 한 패션쇼가 취소됐다. 외교가와 경제계 인사, 연예인 등 500여 명을 초청해 근정전 앞마당을 중심으로 행사를 열고 근정전 전면과 좌우에 회랑처럼 연결된 행각(行閣)을 모델들의 런웨이로 활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도 거쳤고,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경복궁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릴 기회였는데 참 아쉽게 됐다.

영국은 국왕이 상주하는 버킹엄궁에서 국빈 행사를 열고, 프랑스는 엘리제궁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백악관 발코니에서 패션잡지 보그의 화보를 찍었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부인 카를라 브루니도 2008년 보그 표지 화보를 엘리제궁에서 촬영했다. 문화유산의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대중과 거리를 좁히는 데 인색하지 말았으면 한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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